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위로하라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위로하라
“여호와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 애통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게 하셨다.”—이사야 61:1, 2.
1, 2. 우리는 누구에게 위로를 베풀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참된 위로의 하느님이신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이 재난을 당할 때 관심을 기울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분은 “우울한 영혼들에게 위안의 말을 하고” 애통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데살로니가 첫째 5:14) 우리는 그런 도움이 필요한 동료 숭배자들에게 도움을 베풉니다. 우리는 또한 회중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심지어 이전에 우리에게 사랑을 전혀 나타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나타냅니다.—마태 5:43-48; 갈라디아 6:10.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언된 이런 사명을 낭독한 다음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셨습니다.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영이 내 위에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온유한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알리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나를 보내어 마음이 꺾인 사람을 싸매게 하시고, ··· 애통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게 하셨다.” (이사야 61:1, 2; 누가 4:16-19) 현대의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이 사명이 자신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인정해 왔습니다. “다른 양들”도 기꺼이 그들과 합세하여 그 일을 거들고 있습니다.—요한 10:16.
3. “하느님은 왜 재난을 허락하시는가?” 하고 묻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3 재난이 닥쳐 마음이 꺾인 사람들은 흔히 “하느님은 왜 재난을 허락하시는가?” 하고 묻습니다. 성서에서는 그 질문에 명확히 대답해 줍니다. 그러나 성서를 공부해 온 사람이 아니라면 그 대답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출판물들을 보면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 하지만 우선 어떤 사람들은 성서에서 이사야 61:1, 2에 나오는 것과 같은 구절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게 됩니다. 그 구절에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기 바라신다는 것이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4. 폴란드의 한 증인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학생을 어떻게 도울 수 있었으며, 그 경험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4 나이 든 사람들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폴란드에 사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 십대 소녀가 아는 사람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인 그 여자는 친절하게 몇 가지를 물어보면서 그 소녀가 이런저런 질문과 의문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의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왜 이토록 악이 만연해 있을까? 사람들이 왜 고통을 당하는 걸까? 내 여동생은 왜 소아마비에 걸려 고통을 당하는 걸까? 나는 왜 심장이 약한 걸까? 교회에서는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는데, 만일 정말 그렇다면 나는 하느님을 그만 믿을 거야!” 그 증인은 속으로 여호와께 기도를 한 다음에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니 정말 기쁘구나. 내가 도움이 되면 참 좋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증인은 자신도 어렸을 때 의문스러운 일들이 있었는데, 여호와의 증인이 자기를 도와주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증인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분은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사람들이 최상의 삶을 살기를 바라시지. 그래서 곧 이 땅에 큰 변화를 가져오실 거란다. 병이나 노령 문제, 죽음까지 다 없어지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살게 된단다. 바로 이 땅에서 말이야.” 그 증인은 그 여학생에게 계시록 21:3, 4; 욥기 33:25; 이사야 35:5-7과 65:21-25을 보여 주었습니다. 장시간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 여학생은 위안을 받았음이 역력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알겠군요. 다시 찾아와도 될까요?” 그 여학생은 일주일에 두 번씩 성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위로로
5. 함께 애처로워하는 마음을 표현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실질적인 위로가 될 수 있습니까?
5 다른 사람을 위로하려 할 때, 함께 애처로워하는 말을 하는 것은 확실히 적절한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과 어조를 통해, 슬픔에 잠긴 사람의 처지에 깊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애씁니다. 그런데 겉치레로 상투적인 말을 하는 것으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성서에서는 “우리가 인내와 성경의 위로를 통하여 희망을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로마 15:4) 그러므로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하느님의 왕국이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있으며, 그 왕국이 현재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성서로부터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그 희망이 믿을 만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 추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위로를 베풀게 됩니다.
6. 사람들이 성경에 들어 있는 위로에서 온전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올바른 인식을 갖게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6 우리가 위로하는 사람이 그 위로에서 온전한 유익을
얻으려면 참 하느님을 알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분의 약속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여호와의 숭배자가 아닌 사람을 돕고자 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설명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즉 (1) 성서에 들어 있는 위로는 참 하느님이신 여호와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 (2) 여호와는 전능자이시고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며, 사랑의 하느님이시고 사랑의 친절과 진리가 풍부하신 분이라는 점, (3)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서 정확한 지식을 얻음으로 하느님께 가까이 간다면 그 상황에 대처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점, (4) 성서에는 각 사람이 겪는 특정한 시련과 관련이 있는 성구들이 들어 있다는 점을 설명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7. (ㄱ)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위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충만”하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어떤 일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ㄴ) 자기 행실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깨닫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위로할 수 있습니까?
7 슬픔에 잠긴 사람이 성서를 아는 사람일 경우에는, 고린도 둘째 1:3-7을 읽어 줌으로 영적인 축복을 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받는 위로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충만”하다는 표현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이 성구는 성서야말로 위로의 근원으로서 자기가 더 깊이 고려해 보아야 할 책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로 인해, 아마 다른 기회에, 토의를 더 할 수 있는 기초가 놓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자기가 겪는 어려움이 자기가 옳지 않은 일을 한 결과라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판단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요한 첫째 2:1, 2과 시편 103:11-14에 기록된 내용을 아는 것이 위로가 된다는 점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위로로 사람들을 위로하게 됩니다.
폭력이나 경제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8, 9. 폭력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적절한 위로를 베풀 수 있습니까?
8 지역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 범죄, 광포한 전쟁 등의 폭력 때문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습니까?
9 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분쟁에서 말로든 행동으로든 이쪽이나 저쪽 편을 드는 일이 없도록 조심합니다. (요한 17:16)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이 성서를 사용하여 현재의 가혹한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려 주는 것은 적절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시편 11:5을 읽어 줌으로 여호와께서 폭력을 사랑하는 자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 알려 주거나, 시편 37:1-4을 읽어 줌으로 자신이 직접 앙갚음을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신뢰하라는 하느님의 권고를 지적해 줄 수 있습니다. 시편 72:12-14의 말씀도 현재 하늘의 왕으로 통치하고 계시는 더 큰 솔로몬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폭력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무고한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 알려 줍니다.
10. 여러 해에 걸쳐서 전쟁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참조된 성구들이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까?
10 어떤 지역의 사람들은 서로 대립하는 파벌들이 지배권을 장악하려고 벌이는 끊임없는 분쟁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쟁과 그 여파에 시달리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이 꿈을 꿔 볼 수 있는 전망이라고는, 다른 나라로 도피할 수 있다면 사정이 좀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도피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상당수는 도피하려다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맙니다. 다른 나라로 도피하는 데 성공하는 사람들도 흔히 한 가지 문제는 피했지만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민을 가는 것보다 더 의지할 만한 것에 희망을 두도록 돕기 위해서는 시편 146:3-6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태 24:3, 7, 14이나 디모데 둘째 3:1-5에 나오는 예언도 그들이 시야를 넓혀서 자기들이 겪고 있는 사태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즉 우리가 낡은 사물의 제도의 종결 기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편 46:1-3, 8, 9과 이사야 2:2-4 같은 성구들도 그들이 미래에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참된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1. 서아프리카의 한 여자에게 위로가 된 성구는 무엇이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11 서아프리카에서 한창 전쟁이 벌어지던 시기에 한 여자는 탄환이 빗발치는 가운데 고향을 등지고 피난하였습니다. 그 여자의 삶은 두려움과 슬픔과 가슴 저린 빌립보 4:6, 7과 시편 55:22을 보여 주고 「파수대」와 「깨어라!」의 성경에 기초한 기사들을 전해 주자, 그 여자는 마침내 위로를 얻고 삶의 목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실망감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가족이 다른 나라에서 사는 동안, 그의 남편은 결혼 증명서를 태워 버리고 당시에 임신을 하고 있던 아내와 열살 된 아들을 내보낸 다음 자기는 사제가 되기로 작심하였습니다. 그 여자에게12. (ㄱ) 성경에서는 경제적으로 심한 압력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위안을 베풉니까? (ㄴ) 아시아의 한 증인은 어느 고객을 어떻게 도울 수 있었습니까?
12 경제 파탄으로 인해 생활상에 심한 피해를 입은 사람도 무수히 많습니다. 때때로 이것 역시 전쟁과 그 여파로 인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현명하지 못한 정부 시책,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탐욕과 부정직 등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해, 통장의 돈이 다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유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기도 합니다. 또, 이 세상의 물품을 별로 가져 본 일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구제하시겠다고 확약하시며 사람들이 의로운 세상에서 자신의 손으로 수고한 것을 누리게 될 것을 보증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 146:6, 7; 이사야 65:17, 21-23; 베드로 둘째 3:13)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한 증인은 어느 고객이 그 나라의 경제 상태에 대해 염려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서,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은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전형적인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명하였습니다. 마태 24:3-14과 시편 37:9-11을 논의한 결과 정기적인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13. (ㄱ) 지켜지지 않는 약속 때문에 실망해 온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우리는 성서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습니까? (ㄴ) 나쁜 상황은 하느님이 없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추리하고자 노력할 수 있습니까?
13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고통을 당해 왔거나 지켜지지 않는 약속 때문에 여러 번 실망하다 보면, 그들은 ‘낙담 때문에’ 듣지 않은 이집트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탈출 6:9) 그런 경우에는 그들이 당면 문제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쓸데없이 망쳐 놓는 함정들을 피하는 데 성서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강조하는 것이 유익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 첫째 4:8) 자신들이 나쁜 상황 속에 사는 것은 하느님이 없거나 하느님이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도움을 베푸셨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이 깨닫도록 돕기 위해 적절한 성구들을 사용하여 추리할 수 있습니다.—이사야 48:17, 18.
태풍이나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14, 15. 재난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여호와의 증인은 어떻게 관심을 나타냈습니까?
14 재난은 태풍이나 지진, 화재나 폭발 때문에 닥치기도 합니다. 사방이 슬픔에 잠긴 사람들 천지일지 모릅니다. 생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15 사람들은 관심이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있었던 한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사람, 친구, 직장을 잃었으며, 어떤 종류의 안전감이든 자기들이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안전감을 상실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 그들이 큰 피해를 당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성서를 사용하여 위로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처럼 관심을 나타낸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깊이 감사하였습니다.
16. 엘살바도르의 한 지역에 재난이 닥쳤을 때, 그 지방 증인들의 야외 봉사가 매우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2001년에 엘살바도르에서는 강한 지진이 발생했는데 뒤이어 엄청난 진흙 사태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증인의 25세 된 아들과 그 아들의 약혼녀의 두 여동생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젊은이의 어머니는 아들의 약혼녀와 함께 즉시 야외 봉사에 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은 사람들을 하느님이 데려가셨다고, 혹은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증인들은 잠언 10:22을 인용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고통을 당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5:12을 읽어 줌으로 죽음이 들어오게 된 것은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시편 34:18; 시편 37:29; 이사야 25:8; 계시록 21:3, 4에 나오는 위로의 소식도 알려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기꺼이 귀를 기울였는데, 특히 그 두 여자도 그 재난으로 가족 성원을 잃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17. 재난의 때에 우리는 어떤 도움을 베풀 수 있습니까?
17 재난이 닥친 곳에서는 실질적 도움이 당장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의사를 불러 주거나 병원에 가도록 도와주는 것, 먹을 것과 거처를 마련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등이 관련될 수 있습니다. 1998년에 이탈리아에 그런 재난이 닥쳤을 때 한 언론인은 여호와의 증인이 “실용적인 방식으로 활동하여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는데, 그들이 어떤 종교를 믿든지 개의치 않았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마지막 날에 있을 것으로 예언된 사건들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지역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그런 일들이 성서에 예언된 것임을 설명해 주고, 하느님의 왕국이 인류에게 참다운 안전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성서의 보증으로 사람들을 위로합니다.—잠언 1:33; 미가 4:4.
가족 성원과 사별한 사람들을
18-20. 가족 성원과 사별한 사람을 위해서는 위로가 될 만한 무슨 말이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18 매일같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에 잠기는 사람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다가 혹은 일상생활을 하다가 그런 일로 애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로가 될 만한 무슨 말 혹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19 그 사람이 감정적 번민에 빠져 있습니까? 그 집에 슬픔에 잠긴 친척들이 가득합니까?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이 많겠지만, 슬기롭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도 3:1, 7) 아마도, 애도를 표하고 적합한 성서 출판물(팜플렛이나 잡지나 전도지)을 남겨 준 다음 도와줄 만한 일이 더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며칠 후에 찾아가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적당한 시기에, 성서를 사용하여 격려적인 생각을 몇 가지 알려 주겠다고 제안하십시오. 이것은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치료해 주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잠언 16:24; 25:11) 우리가 예수처럼 죽은 사람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서에서 죽은 사람의 상태에 대해 말하는 내용은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때는 잘못된 견해를 논박하려고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 146:4; 전도 9:5, 10; 에스겔 18:4) 부활에 관한 성서의 약속들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요한 5:28, 29; 사도 24:15) 그 약속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의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 아마 부활 사례에 관한 성서 기록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8:49-56; 요한 11:39-44) 또한 우리에게 그러한 희망을 주시는, 사랑 많으신 하느님의 특성들로 주의를 이끄십시오. (욥 14:14, 15; 요한 3:16) 그러한 가르침이 당신에게 어떤 유익을 주었는지, 당신이 그런 가르침을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20 왕국회관으로 초대하는 것은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고 서로를 세워 줄 줄 아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그 슬픔에 잠긴 사람이 알게 해 줄 것입니다. 스웨덴의 한 여자는 자신이 평생토록 찾고 있던 것을 왕국회관에서 발견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요한 13:35; 데살로니가 첫째 5:11.
21, 22. (ㄱ) 위로를 베풀려고 할 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ㄴ) 성경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위로를 베풀 수 있습니까?
21 그리스도인 회중 안에서든 밖에서든 슬픔에 잠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때가 있습니까? 성서에서 흔히 “위로”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가 문자적으로는 “곁으로 부름”을 의미합니다. 참다운 위로자가 된다는 것은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필요에 응할 태세를 갖추는 것을 의미합니다.—잠언 17:17.
22 우리가 위로해 주려는 사람이 죽음과 대속과 부활에 대해 성서에서 말하는 바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합니까? 같은 믿음을 가진 벗이 함께 있어 준다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면 잘 들어 주십시오.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어야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구를 읽을 경우에는 하느님이 두 사람 모두의 마음에 힘을 주시려고 그 말씀을 하신 것으로 여기십시오. 두 사람 모두 성구들에 약속된 바가 확실하다는 데 강한 확신을 두고 있음을 이야기하십시오. 우리는 하느님의 동정심을 숙고해 보고 하느님의 말씀에 담긴 소중한 진리를 함께 이야기함으로,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 “모든 위로의 하느님” 여호와로부터 위안과 힘을 얻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고린도 둘째 1:3.
[각주]
^ 3항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식」 책 제8장, 「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 책 40-47, 228-33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진 창조주가 있는가?」 책 제10장,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신가?」 팜플렛 참조.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 많은 사람들은 재난에 대해 누구를 원망하며,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 다른 사람들이 성서에서 베푸는 위로로부터 온전히 유익을 얻도록 돕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는 어떤 상황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기게 되며, 당신은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습니까?
[연구 질문]
[23면 삽화]
고난의 때에 참된 위안의 소식을 전함
[각주]
난민 수용소: UN PHOTO 186811/J. Isaac
[24면 삽화]
벗이 함께 있어 준다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될 수 있다